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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의 봉인> 신,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고뇌는 전인류의 보편적인 양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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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의 봉인> 신,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고뇌는 전인류의 보편적인 양상

지노쥬 2012. 5. 19. 02:54

<제 7의 봉인> 

신,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고뇌는 중세를 넘어 전인류의 보편적인 양상

신의 존재와 구원, 삶에 대한 철학을 표현한 잉마르 베리만의 흑백영화, 제 7의 봉인. 전문가의 평이 9.0에 달하고 '아름다운' 철학적 여정을 그린 영화라고 칭송을 받는 영화이다. 리뷰에 앞서, 필자는 개신교임을 밝히는 바이다. 




(영화정보 - 씨네21)


중세시대 페스트가 창궐하고 모두가 죽어나가던 그 시절, 죽음을 맞서는 7명의 각기 다른 사람들을 잘 그려낸 영화이다. 십자군으로 나선 기사 안토니우스 블로크(막스 폰 시도우)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죽음의 사자를 만나 사자에게 체스게임을 두자고 제안한다. 체스게임을 두며 시간을 늦춰가며 기사는 신의 존재와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길 원했으며, 삶에 대한 철학적인 고뇌에 빠져들게 된다. 


(제작노트 - 씨네21)


오래부터 인류의 철학이자 신앙이 되어온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이며, 신앙인 혹은 무신론자들도 충분히 가질만한 의문에 대해 논하고 있다. '신은 존재하는가?'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함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 요한계시록 8장 (개역개정)


요한계시록 8장의 구절로 시작과 끝을 맺은 영화는 확실히 마지막 시대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제 7의 봉인>은 페스트가 창궐하고, 사람들이 '마지막 시대'라고 믿었던 황폐한 '암흑기' 14세기의 중세시대를 그리고 있다. 원인 모를 이유(페스트)로 파리에서는 하루만에 800명이 죽어나갔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 재앙이 내려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카치오의 기록에 따르면, 이 때에 사람들은 4가지 양상으로 구분되어 나타났다. 사람들의 철학관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상류층 귀족들은 지방이나 외진 곳으로 가서 병균의 전염 위험이 적은 곳으로 피신을 했다. 세상의 종말이 왔다며 파티를 벌이며 타락하는 부류가 있었다.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회개의 방법으로 자신을 학대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타인에게 투사하여 해결하려고 했던 부류가 있었다. <제 7의 봉인>에서는 이 4부류의 사람들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안토니우스 블로크는 신의 무응답으로 인한 구원의 불확신으로 계속되는 고뇌를 하는 사람이다. 죽음의 사자에게 체스게임을 제안하며 죽음까지의 시간을 벌게 된 십자군 참전기사 안토니우스 블로크. 그는 교회를 찾아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에 대한 응답을 받길 바라며, 마녀로 몰린 소녀에게 가서 사탄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지만, 그에게 보이는 것은 죽음 뿐이였다. 기사는 결국 여전히 신의 존재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체로 죽음을 맞아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을 때 이렇게 외친다. "신이시여, 만일 살아 계시다면 나를 구원하소서" 누구든지 사후세계가 있다면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으며, 기사는 거의 전인류의 공통된 관념을 나타내고 있다.


기사의 종자인 욘스는 나름대로 자신의 소신이 강한 사람이다. 알량한 지식으로 허위허식하고 무신론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신의 존재나 구원, 영혼에 대해 회의적이며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계산적인 것만을 바라보는 존재로 비추어진다. 


욘스를 따라온 여자는 마지막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이제 모든게 끝'이라며 활짝 웃는다. 그녀는 삶이 너무 힘들고 고단하여 죽을 날 만을 기다려오며 살아온 사람이다. 삶에 대해 회의적이고 죽음만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죽음'은 답을 주지 않는다. 답을 찾지 못해 계속 해매는 안토니우스는 마침내 '죽음'에게도 대놓고(?) 그의 고뇌를 털어 놓는데, 영화는 '죽음'또한 그 자체가 대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부각시킨다.



광대 부부는 마지막 심판이나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고 그들이 추구하는 예술을 꾸준하게 해나가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비록 가진 것이 없고 대우를 받는 존재도 아니였지만, 스스로를 예술가라 칭하며, 예술을 만들어 내는 것이 사명인 사람들이다. 부부의 아기가 유일한 소망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주목해야 할 캐릭터는 특히 요프이다. 



요프는 우스꽝스럽고 가끔은 모잘라 보이기도 하지만 착하고 가장 순수한 캐릭터이다. 그는 중세 시대의 신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신비주의는 이성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성령님의 임재하심과 신비한 영적 현상을 체험하고 직접 영으로 소통하는 것을 중시한 사람들이다. 물론 요프가 신학적으로 많이 배워서 신비주의를 주장한 인물은 아니지만, 요프는 죽음의 사자나, 성모 마리아, 천사 등 영적인 것을 보고 느끼는 인물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못하지만 요프는 영적인 것들을 보며 직접 체험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신학적으로 뛰어난 사람이거나 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가장 순수한 사람을 가장 영적인 존재로 그려놓았다. 


마지막에 기사와 기사의 부인, 종자, 종자를 따라온 여자, 서커스단장과 그 부인, 6명은 죽음을 피하지 못하게 되는데, 요프는 기사가 죽음의 사자와 체스를 두고 있는 것을 보고 도망하여 죽음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요프가 영안(영적 눈)이 뜨여있다고 해서 죽음을 피했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논리이지만, 어쨌든 살아남은 사람은 요프이다. (제작자의 의도는 삶과 죽음에 대한 전반적인 토론장을 열기 위한 것으로 보였지만 요프를 본다면 제작자가 신비주의 혹은 성령님, 깨어 있어야 함을 강조하려고 한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요프를 통해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사명감을 갖고 하는 광대부부에게는 사실, 천국이 따로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날 그날이 행복하다면 그 곳이 천국인 셈이다. 기사는 광대부부와의 평안한 저녁을 맞으며 온 고통을 잊고 평안하다고 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여기에서 배워야 한다. 내가 숨쉬는 오늘이 가장 소중한 날이며,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천국일 수 있다. 



<제 7의 봉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마지막 세대라는 것을 그린 영화이다. 우린 누구나 죽게 되며,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영화는 14세기를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마지막 날(혹은 죽음)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로 간주한다. 영화는 죽음 앞에, 혹은 마지막 심판 앞에 각 사람들을 직접  마주하게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사실, 이 영화를 딱 보고 나왔을 때는 역사책을 읽은 느낌이였다. 아까 언급했듯이, 보카치오의 기록에 따른 14세기 중세시대의 4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죽음'이라는 요소 앞에 분명하게 잘 표현해냈다고밖에 생각이 안들었다. 물론, 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삶이나 죽음, 신과 영혼에 대한 생각이 영화 속 인류의 대변인들과는 다르다. 삶이나 죽음에 대해 회의적이지 않으며 신이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실 요프가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여겼고, 요프를 통해서 작가가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천국을 소망하는 삶은 요프의 삶과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더불어, 가장 순수한 영성을 지닌 요프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자에 가장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마태복음 18:3 (개역개정)





+) 덧붗여서, 실제로 우리가 죽어 천국에 가게 된다면 죽음의 사자가 아니라 천사가 데리러 올것이라 믿는다. 죽음의 사자가 6명을 줄지어 끌고 가는 모습을 본다면, 도저히 그들이 천국에 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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