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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또다른 살인 - 영화리뷰: 그린마일 Green Mile (1999) 본문
영화 그린마일과 사형제에 대한 고찰
아직까지도 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사형제는 각 나라에서 그 모습을 다르게 한체 존재하고 있다. 사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형을 또하나의 살인으로 치부한다. 과연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해할 권리가 있는 것인가.
인권선언문은 인류의 자유와 평등, 박애를 외치고 있다. 사형제는 이 3가지의 중요요소 무시한 체 근본적인 생명자체의 권리를 논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형수들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살인을 저질러 사형을 선고 받았다. 물론 살인자에게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 생명은 인권 중 가장 근본이 되는 기본권이며 이는 하늘로부터 받은 천부권으로 치부된다. 사람이 출생함과 동시에 갖게 되는 것으로 출생신고를 해서 나라로부터 받는 권리가 아닌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생명을 허락하신 신으로부터 인정받는 권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의 권리를 인간의 의지로 빼앗아 버린 사형수들이 분명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고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사회라 한들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다룰 수 있는 권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사형제는 그 자체만으로 모순점을 가지고 있다. 인권선언문이 생명과 생명을 해할 수 있는 권리는 오직 하늘에 있음을 밝히면서 사형제는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생명권을 무시한 체 죄수들의 ‘죽음’을 선고하고 있다.
영화 ‘그린마일’은 이러한 사형제의 문제를 극적인 드라마와 결부되어 연출시켜 사형제 반대를 외치고 있다. 영화는 사형수의 교도관이었던 에지콤의 회상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죽은 두 어린 여자아이들을 안고 울부짖는 체로 보안관들에게 체포된 존 커피는 연쇄살인범의 누명을 쓴 체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영화에서 존 커피는 예수님이 형상화되어 손으로 병을 고치는 드라마틱하고 기적적인 인물로 표현된다. 교도관 에지콤은 존 커피가 절대 살인을 저지를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저 증거불충분과 사건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살인마로 몰린 존 커피의 사형선고는 세상의 매정함과 사형제의 부적당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이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고 한다. 물론 복수를 꿈꾸며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거나 혹은 일명 사이코패스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 체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지만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화와 충동에 못 이겨 살인을 저지르곤 한다. 한 번의 실수가 사람의 일생을 망친다고 하지만 그들에게 평생 그 죄에 대한 벌을 행하며 지내라고는 한 들, 또다른 ‘살인’을 선고한다는 것은 부적당하다.
잠시 기독교의 관점을 빌리자면 살인이나 간음이나 성폭행이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똑같은 죄이다. 죄에는 크거나 작은 정도가 없으며 인류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하나님 아래서 인류가 서로를 정죄하며 사형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처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원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는 사실 기독교뿐 아니라 천주교 등 많은 종교에서 따르고 있는 관점이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한들 죄수 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만약 세상에서 그 실수를 만회할 길이 있다면 벌로써 그 죄값을 치르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 종교인들의 관점이다. 종교는 평화를 사랑하며 인류를 사랑한다. 인류는 평등하며 그 누구도 해함을 받을 권리가 없다. 생명권이 오직 하늘에 있는 것처럼 사람의 죽음 또한 하늘에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노인이 된 에지콤은 그 날까지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존 커피의 선한 눈과 그의 기적을 기억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친다. 존 커피의 사형 이후 에지콤은 사형수 교도관장의 자리에 사표를 냈고 더 이상은 무고하게 죽을 수도 있는 사형수들의 사형을 맡지 않았다. 사람은 사람이기에 절대 완벽할 수가 없다. 아무리 유능한 형사나 검사라 해도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사건을 마무리 짓기 위해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위장하는 일도 충분히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들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들도 충분히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실수로, 또는 한 사람을 엄청난 죄인으로 몰아가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무고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어간다. 어쩌면 누명을 쓰고 일찍 생을 마감한 어떤 사람들 중 세상을 바꿀 놀라울 힘이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 지도 모른다.
존 커피는 아무런 죄없이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고 생을 마감했다. 살인현장에 있었던 존 커피가 잘못인가? 그는 그의 예수님의 능력으로 죽은 여자아이들을 살리려고 했다. 그렇다면 애초에 죽은 아이들을 살리려고 했던 것이 잘못인가? 아니다. 아무도 이 질문들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에지콤이 잘못인가? 에지콤이 의인을 알아보고도 사형을 집행한 것이 잘못인가? 존 커피가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사형을 집행시킨 교도관의 잘못인가? 그것도 아니다. 존 커피의 문제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이렇듯 모든 무고한 사람들의 사형집행에 대한 도덕성논란은 모두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생기게 된다. 그 두 어린아이들의 실제 살인자인 와일드 빌을 만든 것은 사회이다. 사회가 그에게 살인을 하도록 동기를 주었다. 빈곤 혹은 사회성 문제 등. 그리고 사회는 존이 누명을 벗을 수 있을만한 기회를 주지 않았다. 증거가 너무 불충분했고 피해자들은 존을 본 것이 아니라 존이 살해된 아이들을 안고 있는 것만을 보고 존을 살인자로 확신해버렸다. 사회는 변호사와 검사들이 더 이상 성가신 일을 하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사회는 이미 관습적으로 사람을 죽인자는 사형에 처한다라는 모순적인 법을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는 죄없는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
또하나 여기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살인마가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살인마를 죽여도 살인마에게 당한 무고한 사람은 살아나지 않는다. 죄값을 치르게 하기 위해 살인마를 사형에 처하는 것, 또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 그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보자. 연쇄살인범이 될 수도 있는 죄수를, 다음 살인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면 사형제 말고도 많은 다른 방법이 존재한다. 고대부터 복수심으로부터 비롯된 사형제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사회는 다시 한 번 고려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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