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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예수님 이름에 먹칠하는 한국교회, 우리는 변화해야 합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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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예수님 이름에 먹칠하는 한국교회, 우리는 변화해야 합니다.

지노쥬 2011. 11. 11. 11:02




도가니 (2011)

감독: 황동혁  |  원작: 공지영



도가니의 파급력
전국적으로 사람들의 언성이 높아지게 만든 영화 도가니. 
광주의 한 장애학교에서의 교사진의 성폭력 문제와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인한 묻혀진 진실을 다시 들추어낸 영화 도가니는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이루어지게 만들었다. 

9.46점의 평점을 받고 있는 영화 도가니의 평점을 보면 한결같이 "화가난다"고 한다. 정말 영화를 보고 화가 났다. 사건 피의자들은 현재 교직, 변호사, 검사 등의 직위를 계속 맡고 있다. 교육청에서 "방과 후의 사건은 교육청 소관이 아니라 시청 소관"이라며 사건의 책임을 회피했던 교육청 여직원(?) 역시 지금 정치계에서 요직을 맡고 있다고 한다. 영화는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는데, 소설과 영화 둘다 진실을 많이 완화시켜서 실제사건의 반도 안되는 수위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니 전국민이 도가니에 광분할 만도 하다. 이렇게 전국민이 광분한 도가니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 이름에 먹칠을 한다. 



대놓고 무너지는 십자가
사실 영화를 보기 10분 전에 같이 보러 간 친구가 말해줘서 알았다. 그냥 어떤 한 사건인 줄 알았지, 이 영화가 한국교회를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영화를 보기 10분전 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같이 간 친구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친구였기 때문. 영화가 기독교를 어떻게 표현해내는지도 몰랐을 뿐더러 기독교인인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초반부터 대놓고 십자가를 드러냈다. 교무실 장면 마다 십자가를 빼놓지 않고 나타냈으며, 교장의 양복에까지 십자가 브로치가 박혀있었다. 무진교회의 사람들은 장로님인 교장을 '무조건' 두둔하고 나섰으며 교장의 재판을 두고 사탄마귀니,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느니의 대적기도와 찬양을 했다. 교회가 같은 교회 사람을 감싸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결과는 내려놓는게 아니였던가. 무조건적으로 기독교인의 손을 들어주는 교회, 교회가 아니라 정의의 편에 서야지. 사람의 말과 판단이 어떠하든 간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데, 하나님 편에 서야지 어디에 서는거야. 십자가가 무너졌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너지고 교회의 십자가만이 사람들 손에 들려있었다. 



예수님 이름에 먹칠하는 우리들
나는 한국교회 소속의 기독교인이긴 하지만 내가 소속되어 있는 한국교회가 부끄럽고 속상한 것이 사실이다. 이미 여러 목사님과 장로님 등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죄로 인해서, 그것도 세상적으로도 거대하게 다뤄지는 중죄를 지고 사역직을 물러난 바 있으며, 더군다나 개개인의 부패 뿐 아니라 한국교회 중심부의 부패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교회의 안좋은 모습으로 인해 기독교를 개독교라 욕하며, 수많은 기독교인들도 교회를 떠나버렸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예배하고 하나님 찬양하는게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그게 전부가 아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아래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는 "영혼구원"이라는 지상명령을 받았다.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지는 못할망정 왜 사람들이 주님 곁을 떠나는 것을 더 돋구고만 있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다른 사람들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위함인가? 왜 교회 안에서는 예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을 높이면서 교회 밖에서는 예수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인가.

기독교인들의 믿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내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마음을 다해 예배드리는 것처럼, 다른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것을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천국을 기억하자.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뵈면 과연 예수님 앞에 고개를 떳떳이 들 수 있을 것인가. 세상 속에서 이슈화가 되는 사람들만이 죄인이 아니다. 내 삶을 돌아보자.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것 자체가 죄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비(非) 성경적인 삶 자체가 죄라는 것이다. 오늘도 버스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했던 나는 죄인이다. 




하나님이 너무하신다고? 우리가 너무한거겠지!

기숙사 사감 윤자애는 금치산자인 아버지, 도망간 어머니, 돈을 보고 손주의 성폭행을 묵인해줄 만큼 딱한 민수의 할머니, 그리고 청각장애인인 동생과 민수, 이 불행한 가족을 보며 "가끔 하나님도 너무하신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굶어죽어 가는 아이들이 세상에 수천 수만명이 넘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 사랑의 따뜻한 기운을 느끼지 못하며 죽어가는 영혼들은 너무 많다. 하나님이 그들한테 너무 하신다고, 그게 아니라 우리의 잘못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셨지만 우리는 아름다웠던 세상을 망쳐놓았다.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해, 쉽게 말해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이 세상은 황폐해지고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을 영접할 기회도 없이 죽어간다. 내가 등따숩고 배부르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오늘 숨쉬고 있는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자격이 아니라 선택된 소수가 누리고 있는 엄청난 축복이다. 하나님이 너무하신다고? 우리가 너무한 것이다. 우리가 욕심과 죄악으로 인해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완전하신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드셨을까?

우리는 죄인인지라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인간인지라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왜 크리스쳔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씻겨져 "거듭났기에" 크리스쳔이라고 한다. 거듭났다는 것은 다시 태어났다는 말,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변화해야 되지 않는가. 현재 기독교인들이 마주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문제를 마주하고서는 묵인해버린다는 점이다. 인권유린문제가 일어났을 때 사회운동을 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평안하고 안정된 자신들의 삶에 안주하는 경향이 크다. 우리에게는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있는데도 변화시킬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는 변화해야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부르시지 않으셨다. 




"예수님 모시는 사람"
교장이 경찰한테 끌려가면서 했던 말이 뇌리에 남았다.
"나 예수님 모시는 사람이야"
우리는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아니라 교회안에 있는 '나'를 내 안에 모시고 있는게 아닐까. 예수님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한국교회가 예수님 밖에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회의 크기도, 돈도, 성도수도, 세상 속의 영향력도 아닌, 오직 예수님만이 남았으면 좋겠다. 교회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이니까. 예수님이 없으면 교회는 죽는다. 나중에 천국에서 예수님 얼굴 뵈올 때 "주님, 내가 주님을 모셨습니다" 라고 떳떳하게 고백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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