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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종의 기원 - 진화론 속의 창조론적 사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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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종의 기원 - 진화론 속의 창조론적 사고

지노쥬 2012. 4. 28. 01:16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나서 

진화론 속의 창조론적 사고

"나는 진화론 속에서 창조주의 위대하심을 느꼈지"


* 필자는 20여년간 교회에서 배운 창조론과 대한민국 교과과정에 입각한 진화론 밖에 배우지 않았기에, 매우 편파적인 기독교적 관점을 가지고 있음과 얕은 지식 아래의 '논리글'이 아닌 '감상문'을 쓰고 있음을 밝히는 바 입니다. 



(image - "Origin of Species - Darwin", Wikipedy.com)


성경을 믿는 사람으로써 진화론에 대해서 할 얘기는 매우 많다. 필자는 사실, 다윈의 종의 기원 책을 짚어 들고나서도 내가 과연 이걸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을 정도로 매우 편파적인 기독교적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밝힌다. 하나님이 무엇보다도 사랑하시는 인류가 한낯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논리는 아무래도 코웃음만 치게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 다윈의 종의 기원 책을 읽고나서 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다시 한 번 감탄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종(species)이 장소와 상황에 따라 적응하며 '진화'했다는 진화론의 논리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각 상황과 장소에 맞게 하나님께서 각 종을 그렇게 창조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알아서 '진화'하도록 창조하셨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진화론자에게 묻고 싶다. What about the VERY origin of species? 빅뱅이론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만들어진 우주와, 대폭발에 의해서 사라진 공룡, 그리고 또 생겨난 엄청나게 다양한 종들 - 진화론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빅뱅과 대폭발이 정말 일어났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빅뱅과 대폭발은 어디에서부터 기원했는가? 빅뱅으로 우주가 생기기 이전 무(無)의 상태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 빅뱅을 통해 생겨난 수소와 산소, 에테르 등 각 원소들의 비율이 0.1%만 달랐더라고 우주는 생성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다윈은 수많은 생물들과 자연을 정말 꼼꼼히 연구하여 정교한 이론을 체계화 시킬 수 있었다. 이 글의 핵심 주장으로 들어가자면, <종의 기원>의 다윈의 자연생태계 관찰에 대한 그 짧은 진술을 통해 나는 감격할 수 밖에 없었다. 진드기는 개미에게만 단물(?)을 내어준다거나, 노예개미가 없으면 굶어 죽는다는 개미들이나, 남의 둥지에다가 알을 낳는 새에 대한 예제를 보면서 말이다. 하나님은 진드기 처럼 정말 작은 생물도 굉장히 정교하게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더불어서, 모르는 일이지만, 진드기가 지능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문과생인 내가 다윈의 말을 얼마나 알아들었겠냐마는, 진드기가 개미와 구두로 사전계약을 한 것도 아닐텐데 생존을 위해 점차적으로 그런 공생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다윈의 이론은 비약이 너무 심한 듯 싶다. 


또한, 다윈은 여러 지역에서 미세하게 다른 같은 종에 속한 동물들을 근거로 진화론을 펼치고 있다. 나는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섬세하신 하나님은 각 지역의 환경에 맞도록 그 모든 종들을 비슷하면서도 전부 다르게 창조하셨구나!' 아 놀라운 자연의 신비여... 많은 과학자들은 연구를 거듭 진행할 수록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 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너무나 정교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창 밖만 봐도, 4계절에 맞게 옷을 갈아 입는 나무들의 신비가 놀랍다. 


창조론자로써 진화론에 대해 반박을 못한다거나 오히려 내 믿음이 흔들리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무식한 걱정을 하면서 책을 폈지만, 오히려 자연의 신비와 창조주의 위대하심을, 정교하심을 더욱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자연과학을 직접 탐구하고 관찰한다면 그 감격은 배가 되겠지만-.





- 번외 : 사회구조 속의 진화론적 사고의 위험성

하지만 다윈이 말했듯이 진화란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며, 한 세대가 관찰하기에는 인류의 수명이 턱없이 짧다는 점을 감안해 완벽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아담과 하와가 첫 인류였음을 본 사람도 없으니 창조론도 물론 완벽할 수가 없겠지. 사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 뵙고 질문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인류라는 종족이 아담과 하와에서 시작했는지 원숭이에서 시작했는지. 우리는 그저 가설에 입각한 논리를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토론은 무의미하기까지 한 것 같다. 하지만, 인류의 기원과는 별개로 진화론적 사고나 창조론적 사고가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간과할 수가 없다. 특히, 지금처럼 상대와의 극심한 경쟁이 계속되는 사회 속의 적자생존과 자연션택적인 사고가 얼마나 위험하고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적자생존에 따르면, 적응하지 못하는 자는 결국 사라지게 되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주객전도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인류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인가, 사회가 인류를 만들어가는 것인가?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적응해야 하고 변화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변화되지 못하는 자는 결국 사라져야 하는가? 그 사회가 악(惡)할지라도 우리는 그런 세상에 적응하며 그 사회를 유지시켜야 하는가? 인류가 이 세상의 주인이다. 인류만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변화시켜야만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그저 이 세상에 적응하여 살아남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이 이상사회를 외치겠는가? 진화론적 사고는 주인의식의 부재를 불러일으킬 수 없다.



- 번외 : 편파적인 한국의 교육

내가 교회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나는 우리의 조상이 당연히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믿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교과과정에 창조론은 있지 않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과학시간에 인류의 기원에 대해 배우고 집에 와서는 아빠한테 질문을 했다.

"아빠, 그럼 아담과 하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였어요?" 

황당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운대로 첫 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고, 교회에서 배운대로 아담과 하와는 첫 인류였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그렇게 못생겼다는게 이해가 안되서 아빠께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아빠가 대답해주시기 전까지 나는 인류의 기원에 있어서 두 가지 설이 존재한다는 개념을 몰랐다. 학교에서도 우리의 조상이 당연히 원숭이라고 가르쳤지, 원숭이일 수도 있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고등학교 생물선생님은 창조론자셨는지, 아니면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으셔서였는지, 교과서의 진화론 부분을 과감하게 뛰어넘으셨다.ㅎㅎ 그리고 일체 어떤 발언도 하지 않으셨지...ㅎㅎㅎㅎ 완전 멋쟁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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