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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사고의 관계 - 언어는 사고를 제한하는가?

지노쥬 2013. 7. 9. 16:20



언어와 사고의 관계 - 언어는 사고를 제한하는가?


언어결정론은 언어가 사고와 세계를 제한한다는 이론이다. 많은 언어학자들이 언어의 한계가 사고의 한계를 나타낸다고 주장하고 있다. 훔볼트는

"언어는 사고를 형성하는 기관이다. 철두철미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말하자면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지적 활동은 음성을 통해서 말로 외면화되며 감각으로 지각될 수 있게 된다. 그 때문에 지적 활동은 언어와 하나이며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지적활동은 또한 그 자체로 말소리와 결핟되어야 하는 필연성에 얽매여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는 명료하게 될 수 없으며, 표상은 개념으로 될 수 없다. 사상, 발성기관 및 청각과 언어와의 뗄 수 없는 결합은 영원불변하게 더 이상 해명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원천적인 조직 속에 존재한다," 고 했다. 


현대 천재언어학자로 불리는 노암 촘스키 또한 사고와 언어의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서, 인간은 유아기 때 언어를 통해 학습을 한다고 했으며, 언어결정론 학자 중 사피어-워프는 “우리는 우리 모국어가 그어놓은 선에 따라 자연세계를 분단한다”라고 하며 언어는 현실의 거울이고, 언어와 현실이 서로를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비트겐슈타인 또한 “내 언어의 한계들은 내 세계의 한계들을 뜻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러한 언어결정론은 노암촘스키의 유아기의 언어를 습득하는 시기의 인지심리학에 관련된 이론에서 더욱 확실시 될 수 있는데, 사람이 어떠한 개념을 인지하고 학습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학습을 한다고 하기 때문에, 우리의 사고능력 또한 학습된 언어의 한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이 성립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사고는 언어에 의해서 제한될 수 있는 것일까? 


언어는 일종의 약속된 기호이다. 언어 자체는 사고에서 비롯된 상징일 뿐이다. 언어라는 것 자체가 원래 어떤 거대한 개념, 틀, 생각을 ~~이라고 지칭하자고 약속한 것이니까. 


하지만 확실히 습득 단계에 있어서 우리는 언어로부터 생각을 키워나가는게 맞다. 실제로 심리학습발달과정에 있어서, 우리는 어떠한 추상적인 개념(자유나 행복 등)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 전까지는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언어 등의 통로로 사고를 발전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이 schema를 학습하는데 있어서 언어가 지배적으로 작용하지는 못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네모와 세모의 차이는 니은(ㄴ)과 시옷(ㅅ)의 차이가 아니고 그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네모 모양을 보고 단어 '네모'를 생각하고 세모 모양을 보고 단어 '세모'를 배운다. 자유, 행복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과연 언어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자유롭다거나 행복하다는 느낌은 아마 사람들마다 모두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요소를 통틀어서 '자유' 또는 '행복'이라고 이름붙인 것일지도 모른다. 즉, 언어를 통해서 우리가 어떠한 개념과 가치에 대해 배우는 것은 맞지만, 우리가 언어를 배운만큼만 사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언어는 우리가 지식을 습득하고 표현하고 소통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사고하는 것의 밑거름이 되어주는 것이지 사고 위에 존재하여 사고를 제한할 수 있다고는 볼 수 없다. 


political correctness는 사회에서 쓰이는 용어 중, 부적격한 단어 (Nigger깜둥이, 최근에는 살인진드기, 위안부 등)를 다른 단어로 바꿈으로서 대중에게 다른 사고를 인식시키는 것이다. Nigger는 흑인을 비하하는 말로 African American으로 쓰도록 했고, 최근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살인'진드기라는 이름이 실제보다 더 위험성과 불안성을 조장한다고 했다. 가장 큰 이슈로는 위안부라는 명칭인데, 이는 일본군인이 과거 성노리개로 삼았던 조선 여자들을 들리기에 그럴싸하게끔 '위안'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포장하는 듯해 공식명칭을 바꾸기로 한 바 있다. 


조지오웰의 1984에는 Newspeak라는 개념이 나온다. 이는, 불필요한 단어를 사전에서 없애고 사용하지 말도록 하여 효율을 높이자는 취지하에 사람들의 사고를 통제하려는 communism의 사고가 들어간 개념이다. 예를들어 '나쁘다'라는 단어와 '좋지않다'는 뜻이 같으니, '나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해서 대중의 정신적 판단을 차단할 수 있도록 한다는 개념이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감정, 그리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풍부한 사고를 과연 언어가 막을 수 있을까? 적절한 단어가 없기에 표현이 불가능한 것일 뿐이지, 실제로 그걸 표현할 단어가 없다고 해서 그 생각을 그만둘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어린이나 아직 언어학습이 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이 행복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지만 표현할 줄을 모른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이 그 언어를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보는 것엔 문제가 있지 않을까? 아마 그 사람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배우자마자 바로 그 개념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Newspeak나 Political correctness가 정말 사고를 지배할 수 있을까? 위안부라는 단어 대신에 성노예였나 하는 더욱 노골적인 단어를 쓴다면 위안부 할머니들로 인한 우리들의 분노는 더 커질 것인가? 반대로, 성노리개라는 단어 대신 위안부라는 단어를 썼다고 해서 우리민족의 일본에 대한 분노가 줄어드는가? 그건 아닐 것이다. 똑같이 분노하고, 오히려 위안부라는 단어를 써서 좋게 포장하려고 했던 일본군에 더욱 화가 났으면 화가 났겠지. 


무엇보다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같은 단어를 쓰곤 한다. 대화를 할 때도 '아, 그, 그런거 있잖아 왜,' 같은 식으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나 느낌, 또는 어떠한 개념 등. 우리는 그런 개념에 대해서 언어로 배우지 않았지만 실제로 느끼고 사고한다. 이것만 봤을 때만 해도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언어는 상징이다. 우리가 사고하는 것 전체의 극히, 또는 일부를 상징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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